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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열한 살에 만났다. 옥혜숙, 이상헌

오늘만산다! 2023. 11. 5. 15:50


잔잔한 감동이 있는 책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청소년기를 지나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고 늙어간다. 이렇게 개개인의 삶이 대부분 비슷해보이지만 절대 비슷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 추억과 세월속에 녹아있는 경험과 기쁨, 슬픔이 다르고 모두의 삶이 한편의 소설이 된다. 그렇게 함께한 세월을 기록한 글이다.

초등학교 5학년 같은반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대학시절 연애하고 결혼해서 결혼 30주년을 맞이했다. 기념으로 남편과 아내가 추억을 맞춰가며 주고 받아 글을 썼다. 평범한 부부의 삶에 대한 서사이지만 담담하게 써내려간 글 속에서 뭉클한 감동이 있다.

p. 46. 그 이후로 나는 삶의 '설계'를 믿지 않는다. 설계하는 것은 당신의 자유다. 하지만 설계한 대로 될 것이라 믿지 말라. 삶의 고통만 더해진다. 삶을 설계할 때 다가오는 찰나 같은 짜릿함. 딱 그것 뿐이다. 우리는 연애를 설계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찬란하게 버티었다.

인생이 계획한 대로 되지 않는 다는 것을 이제 아는 나이가 되었다. 돌아보니 그랬다. 내가 바라고 계획한 대로 된 것도 있지만 그보다는 내 바람과 의지와는 다르게 엉뚱하게 삶은 흘러왔다. 그걸 바로잡아 보겠다고 매일 애쓰고 다시 계획하고 실천해보려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계획대로 안된다는 걸 알면 조금 느긋한 마음으로 "그래, 또 어떻게든 되겠지~" 생각해볼 법도 한데 타고난 조급한 성격에 또 하루하루 전전긍긍한다.

이 두 부부의 삶도 녹록치는 않았다. 하지만 매 순간마다 위기를 어찌어찌 극복해나가고 지치지 않고 서로를 다독였으며 자신의 자리에서 끊임없이 노력했다.

p. 235. 혹 길바닥에 내려 두고 가는 것은 없나 하여 시간을 꼭꼭 가슴에 여미고 다녔는데도 그 20년의 시간은  어디 갔는지 흔적하나 없고 잘 여미었다는 가슴에는 바람 한 줄기만 남았다. 그렇게 여미고 살 일이 아니었는데, 괜히 조바심만 키우고 살았나보다. 세월따라 이렇게 다 가고 없는데 너는 꼭 남았다.

아내에 대한 고마움과 사랑이 느껴지는 문단이다.

아이도 다 자라서 부모 곁을 떠나고 단둘이 남은 중년의 부부. '불완전한 것은 그런대로 보듬어가며 서로의 어깨를 더 필요로 하며' 행복하게 잘 지내겠다고 하신다. 앞으로 오래오래 건강하고 편안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