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 습관을 위해 매일 한장씩 수학문제집 풀이 과제를 시키고 있다. 매주 한번씩 걷어서 확인하고 다음주까지 해야할 분량의 페이지에 도장을 찍어준다. 몇월 몇일이 찍혀 있어서 그 날까지 해서 제출하라는 의미이다.
올해 과제를 시작하며 도장을 찍으려니 어라? 2023년으로 바뀌지 않는다. 날짜를 수동으로 돌려가며 바꾸는 도장인데 2011년에 제작한 도장이 2022년까지만 가능한 것이다. 12년만 사용 가능한 도장이었다.
새로 도장을 주문하고 이 도장으로 정년까지 쓸 수 있겠다 생각한다. 정년을 채울수는 없을것 같지만 이게 직장에서의 마지막 도장이겠다 싶다.
25년, 참 오래도 한 직장에 머물렀다. 올해 특히 요즘 떠오르는 생각은 내가 50이 되며 지천명의 나이에 맞게 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렸을때는 잘 몰랐다. 가르친다는 것이 이 직업의 소명이 무엇인지도 어떤 의미인지도 몰랐다. 한해 한해 더해가다보니 내 직업의 의미가 참 소중하다고 느껴지지만 사회적 현실이 녹록치 않으니 그래도 빨리 그만두고 싶다 생각한다.
작년과 다르게 깨우친 이번 달의 생각이다. 학생들은 그냥 저절로 자라지 않는다. 어른의 격려와 칭찬으로 자라난다. 학급안에서 학생들은 나 자신이 학급이라는 사회에 어떤 기여를 하는지, 나 자신은 어떤 걸 잘 하는지, 어떤 부분에서 내가 노력하고 있는지 알아보고 그걸 또한 알아주는 어른을 믿고 지지한다.
그냥 정해진 규칙에 적용하거나 의미없는 칭찬을 남발하거나 귄위로 누르려고 한다면 꼭 사고가 난다. 그래서 3월에 하는 대표적인 일들이 래포 형성이다. 신뢰를 쌓아야 한다. 나는 너를 사랑으로 지켜보고 있다. 지금은 이러이러 해도 나는 너를 믿는다. 작은 노력으로 좀더 훌륭해질 수 있다는 것을 끊임없이 강조하고 이야기 한다.
그냥 잘하면 칭찬하고 잘못하면 혼내는 것이 아니다. 우리 어른들은 그동안의 삶의 경험과 지혜로 진심을 다해 어린이들에게 가능성을 제시하고 그 가능을 성취하는 소소한 팁을 전수해야 한다. 어떤 절망에서도 우뚝 일어설 수 있게 든든한 힘이 되는 지지와 응원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내가 한 해동안 우리 어린이들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이며 어린이들이 나를 믿고 사랑하게 하는 꿀팁이다.
소중한 한 존재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소소한 꿀팁 제시. 이것이 지천명을 맞이한 내가 남은 십여년의 재직기간을 어린이들과 만나려는 큰 방향이다.
이 간단한 진리를 진작에 알았더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