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조 경기지부 교사연수로 (정동을 거닐다)에 다녀왔다. 정동이 어디인지 어떤 동네인지도 잘 모르는데 "언덕밑 정동길에 아직 남아있어요~"하는 노래가사에 나오는 그 정동이다. 가을은 왜 그런지 모르게 고궁을 찾아가보고 싶어진다. 옛길을 걷고 싶어진다.
먼저 모인 곳은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이다. 성당앞 그레이스 카페에서 모여 연수가 시작되었다.
낯설지만 서로 눈인사를 하고 이 공간과 건축물에 대한 설명을 듣는다.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은 한국전통양식과 로마네스크 양식이 조화롭게 반영된 성당으로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35호이다. 상공에서 보았을때 십자 모양의 건축물이며 기와와 한국전통창호의 느낌을 살려내었다. 주교의 의자(주교좌)가 있는 성당이어서 주교좌성당이라고 하며 6.10 민주화 운동 기념비가 있기도 한 역사적으로 의미있는 곳이다.
경성부민관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나서 자리를 옮겨 고종황제가 아관파천을 하실때 지나가셨을 골목을 걸어보았다. 덕수궁은 관람료를 내고 입장해야 하지만 이 길은 덕수궁과 영국대사관 사이의 작은 공간을 길로 내어 덕수궁에 입장하지 않고도 덕수궁에서 예전 러시아공사관까지 거처를 옮기셨을 고종황제의 발걸음을 회상할 수 있게 했다. 가는길에 영국대사관의 문장에 대한 설명도 들었다.
정동에는 궁궐과 함께 여러 교회들이 밀집해 있었다. 구세군교회도 지나치며 보았다.
배재학당을 둘러보았는데 이 배재학당을 졸업한 이승만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을 피력하셨다. 나도 강사님과 같은 의견이다. 한사람의 공과 과가 공존할수 밖에 없을때 공보다 과가 더 크다면 그 사람에 대한 평가는 더 냉철해져야 한다. 이승만은 좀더 깊이 있는 역사적 해석과 고증이 필요한 사람이다. 미국에서의 독립활동과 귀국후 대통령이 되고나서의 행보가 그리 바람직하지만은 않다.
마지막으로 들른곳은 중명전이다. 원래는 고종이 도서관으로 사용하던 곳인데 후에 을사늑약을 체결한 장소이다. 2층건물 중 1층 내부를 전시관으로 꾸며 을사늑약이 체결되던 장면을 상상할 수 있게 꾸며 놓았다.
이완용의 얼굴을 보고 싶어서 전시된 여러 사람들 중 이완용을 찾아보려 했으나 없는 눈썰미에 결국 못찾고 나왔다.
이 연수가 아니었으면 가끔 와보는 덕수궁의 돌담길만 걷다 말았을텐데 아이와 함께 을사늑약과 아관파천의 현장에 서서 나라를 빼앗긴 역사적 사실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어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중명전과 서울주교좌성당은 처음 들러 본 곳이다. 큰 도로에서 건물에 가려져 이런 연수 기회가 아니었더라면 평생 한번도 찾아보지 못했을 장소였다.
연수를 마치고 덕수궁 안으로 들어가 (장욱진 회고전) 미술 전시회도 관람하고 나왔다. 따뜻한 장욱진 선생님의 그림이 좋았다.
개인적으로 얼마만의 여유있는 가을인지 모르겠다. 아이는 내 손이 별로 필요하지 않게 잘 성장했고 (초6) 나는 경제적으로 전전긍긍 거리지 않게 약간은 여유로워졌으며 비단 경제적인 부분만이 아니더라도 내 마음이 조금은 여유롭고 넉넉해져서 주변을 돌아보고 계절을 느끼며 살필수 있게 되었다. 감사한 일이다. 좋은 연수였다. 모아재 연수를 오래동안 기억하고 다음에도 기회가 된다면 함께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