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로 접어드는 중1 아이의 변화가 낯설고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귀엽기만하던 아이가 날선 말투로 나와 거리를 두려고 하니 머릿속으로는 정서적 독립을 하려는 거구나 생각해도 마음 한켠으로는 서운하기 그지없다. 흔히 하는 생각 '어떻게 키웠는데...'
우연히 MBC일타강사 양재진, 양재웅의 사춘기 자녀에 대한 방송을 보다가 이 두분이 쓰신 글이 궁금해졌다.
https://youtu.be/FO1bFrHH5jQ?si=xzmPOk_DOCigMTil
아이와 나의 관계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믿고 기다리면 사춘기 후에 돌아온다고 한다. 부모가 독립을 가르쳐야 한다고 했다.
방송만큼 책은 그리 흥미진진하지는 않았다. 유튜브 방송은 다이어리에 메모해가면서 집중해서 들었는데 책은 훌렁훌렁 책장이 넘어갔다. 다양한 계층의 마음의 병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상담해주듯이 쓴 글이다. 나에게 해당되는 내용은 집중해서 읽고 해당되지 않는 내용, 특히 결혼과 연애에 대한 내용은 무심히 읽었다.
특히 책의 내용중 깊이 고민하게 했던 부분은 우울증과 방어기제에 관한 내용이다.
p. 119. "우울증은 과거에 내가 자주 써오던 내 자아를 지킬수 있었던 방어기제를 어느 순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 왔다는 의미이다."
지난 가을과 겨울 교실에서 무척이나 우울하고 슬펐다. 나는 처음 이 직업을 가졌을 때부터 써오던 학급 운영의 기제, 학생과 수업을 다루는 기술로 나 자신을 지켜왔고 이제 이 방어기제가 들어먹히지 않았기에 불안했는지도 모른다. 어떤 방법으로도 이제 나의 학생들을 통제하기에 벅차다. 나를 지킬 수 있는 어떤 방법도 교실에 없다는 것을 알아버려서 우울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나를 지키는 방어기제를 다시 찾아야만 이 교실에서 살 수 있다. 나의 새로운 방어기제는 무엇일까?
먼저 아동학대법에서의 정서학대 조항을 교사에게 적용시키지 말아야한다. 정서학대 조항이 남아있는 한 교실에서 학생에 대한 통제는 불가능하다. 언제든지 보호자가 어떤 이유를 들어 고소고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두번째 교실 안에서 그동안 해왔던 교사로서의 나를 조금은 내려놓아야 한다. 아니 완전히 내려놓아야 할지도 모른다. 수업에 열심히 참여하는 학생, 순둥순둥 교우관계가 좋은 학생, 선생님을 따르고 존경하는 학생을 기대하지 말고 조금 모자라도 조금 불손해도 말도 안되는 상황이어도 지긋이 눈감아야 할지도 모른다.
세번째 또다른 방법은 직업인으로서의 나에 몰입하지 말고 직업인 외의 나에 집중하고 또다른 나를 찾아보는 것도 방법일 수 있겠다.
마지막 방법은 최선을 다해보되 그래도 희망이 없다면 미련없이 떠나는 것도 최후의 방어기제가 될 것이다.
우울은 나의 잘못이 아니다. 나를 인정하고 나를 사랑하며 교사가 아닌 나에 더 집중해보는 것도 방법일 수 있겠다. 올해 나는 나의 새로운 방어기제를 찾으려 끊임없이 나 자신과 내 주변을 탐색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