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많은 약을 받아보기는 일평생 처음이다. 오십대가 되어 이제는 꽃길만 걸어야지 행복시작!을 외치던 내게 건강에 관한 고민이 닥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만큼 건강에 자신이 있었다. 주 6일 이상 운동했고 돌뗑이를 씹어먹어도 될만큼 소화가 잘 되었고 힘도 세고 체력도 좋았기 때문이다.
떨리는 마음으로 다시 방문한 상계백병원. 의사선생님께서 사진을 보며 설명을 열심히 해주신다. 물론 나는 사진을 봐도 어디가 어디인지 알아듣지 못한다. "여기가 소장, 여기는 신장인데... 뭐 특별한 건 보이지 않고.. 아무 문제 없습니다." 나는 가리키는 곳이 소장인지 위인지 전혀 알수 없지만 "네~"하며 열심히 고개를 끄덕거린다.
결론은 위도 대장도 내시경상 엄청 깨끗하고 복부 CT결과 어떤 징후도 보이지 않는단다. 혈액검사에서도 암에 관련된 징후는 보이지 않았다. 결론은 엄청 건강하단다.
그런데 검은 변은 왜일까? 검은 변이 나온다면 어디선가 출혈이 되고 있다는 거다. 교수님께서는 혈액검사에서 혈액수치가 낮다고 하셨다. 빈혈이 있고 출혈이 의심될 수 있으나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다. 교수님은 내 얼굴을 잠깐 바라보더니 "피부가 하얀편이네요. 빈혈때문인가 봅니다." 하셨다. "화장을 해서 그런게 아닐까요?" 대답했다. 큰 병원 오는데 떨리고 기죽지 말라고 평소 하지 않던 파운데이션을 떡칠을 하고 병원에 내원했던 참이었다. 교수님은 찾아내지 못한 출혈에 대한 부연설명을 하고 싶으셨던 것일까? 빈혈이 있고 혈액수치가 낮아서 빈혈과 철분보충, 지혈에 관한 약을 두달 먹어보고 다시 내원하기로 하였다.
지혈약을 먹고 몇주 대변 색깔이 괜찮았는데 지난주 마라톤대회 후 다음날 바로 변색깔이 검게 달라졌다. 피곤하거나 과로하는 경우 어디선가 출혈이 일어나는 게 아닌가 추측이 된다. 열심히 꾸준히 약 먹고 건강관리를 해야하겠다.
더불어 이번에 했던 건강검진 결과 고혈압과 콜레스테롤 수치가 위험수준에 이르렀다. 분명 2년전 건강검진에서는 경계(위험전단계)정도였는데 지금은 위험수준이라며 약을 복용해야 한단다. 40대와 50대가 이렇게 극명하게 건강에서도 차이가 나는건가 싶어 헛웃음이 나온다. 혈압약과 고지혈증 약도 받아왔다.
그래도 어제오늘 나는 마음이 기쁘고 즐겁다. 아직 나는 살아있고 소소하게 하고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을 더 받은 것 같은 기분이다. 인생. 나의 인생. 큰 욕심없이 그냥 이렇게 살아있어 좋아하는 사람과 대화하고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지금 이순간.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다.
오늘 만 산다.
Now n he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