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하 제목이 조금은 이상하다. 나의 오십대는 꽃길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40대가 절망이었기 때문이다. 40대를 잘 버틴 덕에 이제 행복에 마지 않는 50대가 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건 나만의 생각일뿐이고 일상은 여전히 쳇바퀴처럼 별 다름없이 돌아간다.
벌써 2023년의 절반이 지나가고 있는 6월 30일이다. 지난 반년동안 나는 새 집과 새 동네에 적응했고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사소한 도전을 시작했다. 아이는 곧 초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으며 직장은 다사다난 하지만 무난하다.
올 해 유난히 더 나의 지난 삶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서인지 문득문득 떠오르는 생각들이 있는데 이런 이야기를 동료들에게 하면 깊은 공감을 얻지는 못한다. 오늘 문득 깨달은 생각은 이슬아의 (가녀장의 시대)라는 책에서였다. 나는 이슬아 작가를 진심으로 좋아하고 존경한다. 그녀가 얼마나 오랫동안 작가로 성공하기 위해 고군분투 했는지를 그녀의 글을 통해 알고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작가들이 그런 고난의 시간을 거쳐 인지도 있는 작가로 대중앞에 나선다. 그러나 이슬아작가는 그 고난의 시간을 (일간 이슬아)를 통해 보여주었다. 수많은 작가들이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행간으로 보여준다. 이슬아작가는 매일매일 글을 쓰고 일정한 루틴의 하루에 대한 독자와의 약속을 지킨다. 그래서 성공했다. 출판사를 차렸고 유명 작가가 되었으며 아버지와 어머니를 자신의 회사에 취직시켜 행복하게 했다.
아들에게 물었다. 너는 너의 삶에 최선을 다하고 살고 있냐고. 아이가 대답한다. 아닌 것 같다고. 다시 물었다. 다시 생각해 보라고, 그래도 이 정도면 괜찮게 노력하며 살고 있는 것 같지 않냐고. 아들이 대답한다. 그런것 같다 한다. 최선은 아니지만 열심히 살고 있다고 한다. 나도 그렇다. 나는 참 열심히 살고 있다. 단 하루도 그냥저냥 살아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직장에서 친절하고 매분 매시를 고군분투하며 살고 가정에서는 온갖 집안일을 도맡아하며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 보면 바쁘게 사는데 열심히가 아니다. 최선은 아니었다.
굳이 그렇게 열심이어야 하나? 반문한다면 그래 그렇게 살지 않아도 한세상이다. 그런데 내가 만족스럽지 않다면 좀 더 나은 결과를 원한다면 조금더 한발짝 나서야 한다. 지금보다 10배 이상의 에너지를 쏟아부어야 한다.
엄청난 자산을 일구신 친정아버지는 30대부터 항상 새벽운동을 하셨고 일평생 군더더기 뱃살이 없으셨다. 그런 사람이라야 인생의 성공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이 깊어진다.
지금 이순간 오십대 첫해를 보내고있는 나는 내 삶이 조금은 부족하고 더 나아지고 싶다. 남은 6개월도 조금 더 애써야 겠다. 이렇게 적고나니 서글프다. 그동안 뭘하다 이제야 이런 생각을 하는 건지...